아르누보의 선구자, 베베르

Vever, pionnier de l'Art Nouveau

아르누보의 선구자, 베베르: 인정받은 대담함

1900년, 메종 베베르는 그랑 팔레의 유리 지붕 아래에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곡선, 꽃무늬, 날개 달린 여성, 그리고 당시까지 ‘귀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뿔과 유리 페이스트 같은 소재를 사용한 주얼리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그날 베베르는 주얼리 부문 그랑프리를 받았습니다. 첫 수상은 아니었지만, 11년 전 시작한 대담한 시도가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습니다.

1900년 만국박람회 전시 부스

1889년: 첫 번째 빛

모든 것은 1881년, Paul과 Henri Vever가 1821년 조부 Pierre-Paul이 설립한 메종을 이어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Paul은 경영을 맡았고, 드로잉을 공부하고 예술에 열정을 품은 Henri는 주얼리에 전혀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베베르 형제는 첫 그랑프리를 차지했습니다. 평론가들은 ‘주얼리 꽃다발’의 우아함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는 예술적 구성보다 보석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었던 전통 주얼리와 이미 결별한 표현이었습니다.


관습을 깨다

Henri Vever는 단순히 유행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흐름을 만드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자포니즘과 페르시아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열정적인 수집가였던 그는 파리의 공방 너머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Eugène Grasset, Georges Fouquet, 그리고 훗날 독립한 René Lalique까지 당대 최고의 창작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잠자리, 등나무, 여성의 실루엣이 19세기로부터 이어진 정적인 구성을 대신하는 자연주의 주얼리를 탄생시켰습니다.


1900년: 마침내 인정받다

1900년 만국박람회는 이 예술적 여정의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Eugène Grasset와 함께 제작한 아르누보 주얼리 약 20점이 특히 주목받았습니다. 골드, 오팔, 반투명 에나멜로 나비 날개를 지닌 여성을 표현한 실비아 펜던트는 그 상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해 베베르는 주얼리 부문 그랑프리를 받았고 — 이웃 전시관의 Lalique는 장신구 부문 그랑프리를 받았습니다. 두 메종, 두 가지 스타일, 하나의 대담함. Henri Vever가 일기에 썼듯 ‘루이 15세 양식’에서 벗어나려는 대담함이었습니다.

수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1897년 브뤼셀에 이어 1908년 런던에서도 메종 베베르는 다시 그랑프리를 받았습니다. 차르 알렉산드르 3세, 페르시아의 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사토 공작, 사디 카르노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고객들이 평화의 거리에 모여들었습니다.

실비아 펜던트, 파리 장식미술관


주얼리 역사가이기도 했던 Henri Vever

Henri Vever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자신의 분야를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1906년부터 1908년까지 그는 오늘날에도 주얼리 학교에서 연구하는 주요 참고서 19세기 프랑스 장신구를 출간했습니다. 창작자인 동시에 역사가였던 그는 작품을 만들 때만큼이나 철저하게 주얼리의 역사를 기록하며, 메종에 예술적이면서도 지적인 유산을 남겼습니다.


계속되는 대담함

창립 2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대담함은 메종에 살아 있습니다. 7대손인 Camille와 Damien Vever는 아르누보의 유산을 바탕으로 베베르를 되살렸습니다. 그 유산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고 타협 없는 세공으로 완성한다는 창립 이념에 충실한 현대적이고 책임감 있는 주얼리에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원천입니다.

베베르에게 선구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보여주기 위한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1821년부터 이어져 온 신념이자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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